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서원의 유식 공간

 조선왕조에서 서원은 16세기 사림의 상징이자 꽃이다. 사족들은 학행이 뛰어난 인물을 서원에 모셔 모범으로 삼고, 성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침으로써 학파를 이루고 계승하였다. 그리하여 서원은 조선 후기 사족들이 도덕과 가치로 교화하는 자율적 향촌지배기구였으며, 가문·여론·정치의 장이었기 때문에 사회 변화로 사족의 위상이 변하고 붕당정치가 파탄함에 따라 그 위상과 기능도 바뀌었다. 그러나 사림들은 서원을 중심으로 지역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여론을 조성하여 지역사회를 이끌었고, 필요할 때는 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중앙정치에 반영시키면서 자연과의 조화 속에 개성있는 문화와 여유로운 삶을 누렸다.

이러한 서원은 초창기에는 이황(李滉)의 서원관을 바탕으로 보급되었으며 격조 높은 강의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수준 높은 성리학 교육이 이루어졌다. 학문의 방법은 모든 선이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알아 선현의 교훈을 잘 지키며 성인의 고도(古道)를 마음대로 터득하고 몸소 행하여 근본을 밝혀가는 것이었다. 이는 곧 유생들의 장수와 유식이라는 이념으로 발전되었으며 서원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건축물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유식(遊息)이 사림의 예학자들에게 인식되고 서원건축에 표출된 것이다.

1장에서는 본 연구의 목적과 배경, 기존연구사, 방법 등을 설정하였고, 지금까지의 서원 관련 고서와 논문 등을 정리하였다.
2장에서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사상과 이념을 토대로 그에 적용된 건축물과 서원건축에 적용된 장수와 유식공간의 개념을 정리하였다.
3장에서는 조선시대 서원에서 유식공간만을 적용하여 서원의 계획원리와 유식공간의 정의를 살펴보았으며 관련 고문헌을 토대로 기록된 서원 변천과정을 정리하였다. 하지만 문헌상 기록이 없는 경우 연대추정을 통해 서원의 배치변천을 추정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서원의 변천과정에서 나타난 유식공간의 특징과 문헌을 통해 서원의 유식공간의 역할을 정리하였다.
4장에서는 학습공간과 조경공간, 누각공간을 분리하여 각 공간상의 유식공간을 설명하였으며 사례대상물을 대상으로 유식공간이 어떠한 목적과 그 성과는 어떠한 것이었는지 정리하였으며 남계서원의 <재(齋)+헌(軒)>, 도산서당 <마루+온돌>, 회연초당의 유가지리관, 서원주변의 절승지나 곡(曲)과 경(景) 등을 서원건축에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정리하였다. 또한 유식공간의 대표격인 누각(樓閣)의 건립연대를 추정하여 유식공간이 어떠한 목적으로 재실에서 누각으로 확대되었는지 설명하고 그 공간이 기존의 건축물에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분석하였으며 누각이 입지적 특성이나 규범을 대략적이나마 정리하였다.
결론적으로 3장에서 서원의 변천과정을 추정하여 나온 결론으로 누각의 건립연대를 확인하여 서원의 배치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4장에서의 유식공간의 분석된 사례를 통해 유식공간이 서원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영물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대략적이나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것은 곧 서원의 누각건축물로 표현되었으며 이에 누각의 규모와 입지적 특성을 분석하여 유식공간에 의한 건립 목적을 서술하였다. 물론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정학한 위치는 아니지만 대략적이나마 서원의 누각의 어떠한 목적으로 또는 어떠한 역할에 의해서 건립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차후에 진행될 연구 및 복원공사에 보다 능력있는 연구자의 연구에 작으나마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Seowon represented Sarim of 16th century in Choson Dynasty. Sajock, a learned society or group, ushered a superior person into Seowon -their society- , and followed them as models. They passed their academic society to the next generation and studied Sungrihak, an oriental philosophy.
Their society at first was evolved from Lee Huang. Seowonkwan -a viewpoint of Seowon- , and splendid lectures and liberal debates were there. A 'truth' is naturally made, so the pupils kept it and old sages' instruction. They also maintained the old methods and examined the essence of the old metaphysics.
These tendencies were developed to the concept of "Yusik" and "Jangsu", which affected not only Seowon but also buildings during the Choson period. Yusik was recognized by the pupils of Sarim and made Seowon Architecture.

The first chapter contains the goal and background of this study, the rest presents my researches on Seowon, and methods are summarized. The second chapter presents the philosophy and logic of Choson scholars and the concepts of Jangsu and Yusik.
The third chapter presents architectural principles and concepts of Yusik space of Seowon in Choson dynasty is investigated. And the developing sequences of Seowon also are investigated with the related paleography. When the records and ancient writings are not existed, the developing process is conjectured by estimated chronological methods. At the same time, the function of Yusik space with ancient writings and the studies of varied Seowon in Choson dynasty are regulated.
The fourth chapter presents Yusiks space. Studying places, garden places, and a tower places- so called 'nugak'- space categorized by regulating examples with the purpose and results of Yusik space.